안녕하세요. 큐시커입니다. 제가 인터뷰 한 내용들을 알차게 즐기고 계시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총 4명의 인물 인터뷰 글을 작성했습니다. 블로그를 시작한지 2개월 정도 되었는데 이정도면 꽤 좋은 출발인것 같아요 :) 인터뷰 질문 응답을 변역하는 과정에서 제가 챗 GPT를 활용하고 계시는 점, 모두들 아시리라 믿습니다. 제가 공부를 하면서 영어 논문을 작성할 때 마다 저랑 함께 작문 피드백을 해주고 수정해주시는 전문가와 함께 했었습니다. 영어를 잘 못했던 유학생 시절에 대학교에서 제공해주는 서비스가 저에게 큰 도움이 되었기에 챗 지피티가 이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접근한 방법입니다. 챗 지피티가 저랑 함께 번역 작업을 하는 파트너가 되주고 있고, 저도 인터뷰를 지금까지 4건 작업하면서 얻은 작업방식과 데이터를 프롬프트로 저장해 커스텀GPT를 꾸준히 업데이트 하고 있습니다. 보시는 것 처럼 제가 만든 번역용 커스텀 GPT입니다. 대화하듯 언어를 기반으로 사용하는 IIL 인공지능이 앞으로 가능성이 많을거라 생각되어 오픈AI 사의 챗 GPT를 번역용 인공지능으로 선택했습니다. 제가 만든 커스텀 GPT가 기본형 GPT랑 어떤 점이 다른지 비교해보겠습니다. 블로그의 목적과 함께 내가 지피티에게 요청하는 것, 의도, 원하는 점을 설명해줬더니 곧바로 영문으로 작성해줬습니다. 영작에 집중해서 보시죠! 이제, 제가 만든 커스텀 GPT 에도 똑같은 질문을 복사 붙여넣기 해 넣었습니다. 제가 커스텀한 GPT는 영문 뿐만 아니라 한국어도 고려해서 두가지 언어를 신경썼습니다. 두가지 언어를 동시에 생각해서 한국어로 우선 글을 써주고 영어 문맥에 맞춰 영문 번역도 제안해줬습니다. 영문을 보면 어감이나 사용된 용어도 차이점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어요. 어떤게 훨씬 더 자연스럽나요? 이번에는 제가 블로그 포스팅 안에 쓴 글을 복사해서 붙여넣어 챗GPT에게 명령어를 적어넣었습니다. 이것도 글쓴이가 원하는 방향을 잘 정리해서 번역 작업하고, 어떤점을 자연스럽게 고쳤는지 ...
공감능력이 높은 사람일수록 왜 더 지칠까
— 인간관계와 자기보호의 심리학 ③
많은 사람들은 공감능력이 높은 사람을 인간관계를 잘하는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상대를 잘 이해하고, 배려심이 있으며, 분위기를 잘 읽고, 타인의 감정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 말입니다.
실제로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보며 흔히 이야기합니다.
“저 사람은 공감능력이 좋아.”
그런데 인간관계를 오래 관찰해보면 흥미로운 현상이 하나 있습니다.
공감능력이 높은 사람들 중에서도 인간관계로 깊게 지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람을 잘 이해하면서도 관계가 힘들다고 말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상대를 누구보다 잘 배려하면서도 결국 인간관계에서 거리를 두게 됩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요.
공감을 잘하는데 왜 인간관계가 힘들고, 상대를 잘 이해하는데 왜 관계 속에서 지쳐버리는 것일까요.
심리학에서는 이 현상을 단순한 성격 문제로 보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공감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하나의 능력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공감을 하나로 묶어서 이야기하지만 심리학에서는 공감을 여러 요소로 구분합니다.
대표적으로 인지적 공감과 정서적 공감이 있습니다.
인지적 공감은 상대의 상황과 입장을 이해하는 능력에 가깝습니다.
왜 저런 감정을 느끼는지,
왜 저런 행동을 하는지,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
상대를 관찰하고 해석하는 능력입니다.
반면 정서적 공감은 조금 다릅니다.
상대가 힘들면 같이 슬퍼하고, 상대가 불안하면 자신도 덩달아 불안해집니다.
상대의 감정을 자신의 감정처럼 느끼고 받아들이는 능력입니다.
이 역시 사회생활에 꼭 필요한 능력입니다.
이 능력이 없다면 타인을 진심으로 이해하거나 배려하기 어려울 것이고, 힘든 사람을 돕고 싶다는 마음도 생기기 어려울 것입니다.
문제는 정서적 공감이 지나치게 강할 때 발생합니다.
정서적 공감이 높은 사람은 상대를 이해하는 수준을 넘어 상대의 감정까지 함께 떠안기 시작합니다.
누군가의 불안이 자신의 불안이 되고,
누군가의 걱정이 자신의 걱정이 되며,
누군가의 상처가 자신의 상처처럼 느껴집니다.
결국 타인의 감정을 처리하는 데에도 자신의 에너지를 사용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과정이 반복될수록 사람은 점점 지쳐갑니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이 높으면 인간관계를 잘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제 인간관계는 공감만으로 유지되지 않습니다.
상대 감정을 이해하면서도 자신의 감정을 관리할 수 있는가.
상대의 문제를 들으면서도 자기 경계를 유지할 수 있는가.
관계를 이어가면서도 스스로 무너지지 않을 수 있는가.
오히려 이 부분이 더 중요합니다.
공감은 관계를 시작하게 만들 수는 있지만, 관계를 건강하게 유지하게 만드는 능력과는 조금 다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공감이 높은 사람들 중에는 인간관계를 매우 피곤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람 감정을 너무 많이 읽기 때문입니다.
상대의 기분 변화를 과하게 신경 쓰기 때문입니다.
원하지 않아도 분위기를 계속 의식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인간관계 하나하나에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게 되고, 그 결과 쉽게 지치게 됩니다.
이 상태가 반복되면 관계 자체를 부담으로 느끼기 시작합니다.
사람을 싫어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사람을 너무 신경 쓰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에 가깝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피로가 오늘날 더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전에도 인간관계 스트레스는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환경 자체가 달라졌습니다.
사람들은 과거보다 훨씬 더 많은 타인의 감정을 실시간으로 접합니다.
메신저가 있습니다.
SNS가 있습니다.
짧은 반응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합니다.
읽씹과 말투 변화까지 해석합니다.
인간의 감정 처리 능력은 그렇게 빠르게 진화하지 않았는데, 감정을 받아들이는 양은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입니다.
사람은 원래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가 한정된 존재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하루에도 수십 명의 감정과 반응을 접합니다.
좋은 일도 공유되고,
불안도 공유되고,
분노도 공유되고,
우울도 빠르게 퍼집니다.
공감 성향이 높은 사람은 이런 환경에서 특히 더 쉽게 지칩니다.
계속 타인의 감정을 흡수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인간관계의 피로를 단순히 개인의 사회성 부족이나 성격 문제로만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환경 자체가 인간을 쉽게 소진시키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소진된 사람들은 관계를 유지하는 일 자체를 버겁게 느끼기 시작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좋은 관계는 자연스럽게 오래간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제 관계는 생각보다 유지 비용이 높은 구조입니다.
연락해야 하고,
호응해야 하고,
시간을 써야 하며,
때로는 불편한 순간도 견뎌야 합니다.
관계는 감정만으로 유지되지 않습니다.
에너지 역시 필요합니다.
문제는 이미 타인의 감정을 받아들이는 데 많은 에너지를 사용한 사람들은 관계를 유지할 여유까지 점점 잃어버리게 된다는 점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관계망이 줄어드는 현상도 어느 정도는 이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바빠졌고,
혼자 보내는 시간은 늘어났으며,
관계를 유지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는 부족해졌습니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자연스럽게 유지되는 관계보다 의식적으로 관리되는 관계가 더 오래가는 경우도 많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관계를 잘한다는 것이 무조건 상대에게 맞춰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공감이 높은 사람들 중에는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계속 상대에게 맞추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분위기를 깨지 않으려 하고,
상대 기분을 우선시하며,
갈등을 피하려고 합니다.
겉으로 보면 좋은 사람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장기적으로 자신을 빠르게 지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건강한 관계에는 공감만큼이나 경계도 필요합니다.
힘들면 힘들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거절해야 할 순간에는 거절할 수 있어야 합니다.
상대를 이해하더라도 자기 감정까지 모두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공감 성향이 높은 사람들은 종종 이 과정에서 죄책감을 느낍니다.
“내가 참으면 되지 않을까.”
“상대가 힘들 텐데 내가 맞춰야 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들은 단기적으로 관계를 유지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관계 피로를 빠르게 키웁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사람들은 인간관계 자체를 정리하고 싶어집니다.
주변 사람들은 갑자기 차가워졌다고 생각합니다.
원래 이기적인 사람이었다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오랫동안 감정을 과하게 소모하다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한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지금 시대에는 공감이 높은 사람일수록 자기 경계를 배우는 일이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상대를 이해하는 것과 상대 감정에 끌려가는 것은 다릅니다.
배려하는 것과 자기 자신을 소모하는 것은 다릅니다.
관계를 유지하는 것과 관계에 끌려다니는 것도 다릅니다.
이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사람은 인간관계 안에서 계속 지치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 관계 자체를 두려워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지금 사람들은 관계 능력이 부족한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인간관계가 어려운 이유를 개인 능력 부족으로 설명합니다.
사회성이 부족하다.
관계를 못한다.
사람 다루는 기술이 부족하다.
하지만 지금 시대를 보면 꼭 그렇게만 보기도 어렵습니다.
오히려 사람들은 과거보다 훨씬 더 많은 감정 정보와 관계 피로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환경 속에서 계속 자신의 감정을 조절해야 합니다.
어쩌면 지금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인간관계 기술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자신을 소진시키지 않으면서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일 수도 있습니다.
모든 관계에 과하게 반응하지 않는 것.
상대 감정을 이해하되 자기 감정까지 잃지 않는 것.
필요할 때는 거리를 조절할 줄 아는 것.
앞으로 더 중요해질 능력은 어쩌면 공감 자체가 아니라 공감 이후의 자기조절 능력일지도 모릅니다.
지금 시대의 외로움은 단순히 사람이 부족해서 생기는 문제만은 아닐 수 있습니다.
너무 많은 감정 속에서 지쳐버린 결과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무엇을 배워야 할까요.
그리고 앞으로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요.
— HyungIhn Myung의 관찰 기록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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